2014/6/25 세계일보기사에서 옮김
전문가들은 이웃 간 인내와 배려를 강요하기보다는 주택 건설 시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층간소음을 푸는 열쇠가 될 것으로 본다.
층간소음 관련 특허출원은 최근 봇물을 이루고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바닥구조 관련 출원 중 층간소음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전년에 비해 5배나 증가했다.
한정 특허청 심사관은 “재료나 공법에서 비용이 적게 드는 신기술의 개발은 시공비 상승 압박을 완화한다”면서 “층간소음 저감 효과가 뛰어난 바닥구조를 적용한 공동주택은 차별화된 마케팅 무기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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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별’ 지구를 살리자]
층간소음 갈등, 이웃간 배려론 한계… 건축기술로 해결해야
지난 주말 세종시 아파트에 부산과 경기도 안산, 김포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방문했다. 네 가족의 자녀들은 3∼12세로, 활동성이 매우 강했다. 아래층을 포함해 이웃집이 비어 있는 덕에 8명의 아이들은 마구 뛰어다녔다. 손님들은 “오늘은 스트레스 제로”라며 즐거워했다.
어린아이를 둔 부모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층간소음이다. ‘뛰지마’, ‘까치발로 다녀’, ‘조용히 해’와 같은 말을 하루종일 입에 달고 살지만, 자녀들을 ‘공중부양’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라 답답하기가 그지 없다.
세종시로 이사하기 전 서울 아파트에서는 아래층 노부부의 꾸중을 피해 숨어다니다시피 했다. 편하게 쉬어야 할 집에서 어쩌다 죄인 심경이 돼 늘 속상했다.
환경부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민원의 73%가 어린이들의 발소리 때문이다.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되는 상담 요청은 월평균 1155건에 이른다. 민원인들은 당장 해결해달라고 아우성치지만 전국에 17명에 불과한 센터 직원들이 상담과 현장진단, 중재업무까지 처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센터의 한 관계자는 “위층이 상담에 아예 응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강제로 중재할 수는 없어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털어놨다.
이웃 간 살인까지 부르는 층간소음 문제를 주민들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웃사촌의 미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선은 이미 넘었다. 집을 짓는 단계에서부터 층간소음을 원천적으로 줄일 방법은 없을까?
◆층간소음 직접 측정해보니…2000년〉2013년 아파트
건축기준이 강화되기 전후에 지은 아파트에서 실제 층간소음의 차이가 있나 비교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층간소음을 측정할 아파트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윗집에서 뛰고 아래집에서 측정해야 하는데, 대개 층간소음으로 이미 신경전을 벌이는 관계여서 흔쾌히 응하는 곳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5일과 9일, 2000년 3월에 입주한 김포시 J 아파트와 2013년 12월에 입주한 세종시 S 아파트에서 이웃사이센터의 도움으로 층간소음을 측정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아파트와 연립주택 등 공동주택의 층간소음 기준은 그간 조금씩 강화됐다. 1991년 제정된 주택법에는 ‘각 층간의 바닥 충격음을 충분히 차단할 수 있는 구조로 하여야 한다’는 선언적인 내용만 담겼다. 2004년에서야 경량, 중량 충격음의 구체적 기준이 마련됐다.
2005년부터 바닥 두께를 일정기준(벽식구조 21㎝ 등) 이상으로 하거나 바닥 충격음을 경량 58㏈, 중량 50㏈ 이하로 하도록 의무화됐다. 올해 5월부터는 앞의 두 가지 기준을 동시에 만족하도록 강화됐다. 별다른 기준이 없을 때 지어진 김포 아파트는 바닥 두께가 12㎝에 불과했다. 바닥이 두꺼울수록 어린이들이 뛰는 소리와 같은 둔탁한 중량 충격음이 줄어든다. 이 아파트의 관리소장은 “층간소음 민원이 엄청나게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3년에 입주한 세종시의 아파트는 바닥이 21㎝로 두꺼웠다. 소음 완충재도 2㎝ 들어갔다. 소음 완충재는 가구를 끌거나 가벼운 물체가 떨어질 때 발생하는 경량 충격음을 줄인다.
몸무게가 35㎏인 아들과 25㎏인 딸을 데려가 윗집에서 1분간 술래잡기 놀이를 시켰다. 2000년 아파트는 아래집의 층간소음이 43㏈로 정부가 제시하는 주간(오전 6시∼오후 10시) 한계치에 도달했다. 2013년 아파트는 37㏈로 기준치 밑이었다. 소파에서 아이들이 뛰어내릴 때도 2000년 아파트는 46㏈로 기준치를 넘긴 반면 2013년 아파트는 38㏈에 그쳤다. 거실에서 축구하기, CD플레이어로 5분간 음악감상 등의 실험에서 모두 2000년 아파트에서 훨씬 높게 소음이 측정됐다. 층간소음을 줄이는 시공을 하도록 기준을 강화했더니 실제 층간소음이 줄어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2013년에 지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들 역시 심각한 층간소음을 호소한다는 점이다. 이 아파트의 한 주민은 “두꺼운 매트를 온 거실에 깔아놓은 상태”라며 측정 결과가 기준 아래로 나왔다는 말에 “기준이 터무니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층간소음에 취약한 구조…기술로 해결해야
우리나라는 2013년 현재 전체 주택에서 공동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이 63%에 이른다. 세 가구 중 두 가구가 아파트 등에 산다는 얘기다. 공동주택의 대부분은 구조적으로 층간소음에 취약한 벽식구조로 지어진다. 지난해 국감자료를 보면 2009년 이후 준공된 전국 500세대 이상 아파트 가운데 92%가 벽식구조를 채용했다.
벽과 슬라브(콘크리트 구조의 바닥)로 이뤄진 벽식구조는 내부공간 활용이 쉽고 시공비가 저렴하고 공사시간이 짧지만 윗층 바닥에서 발생한 소음이 천정과 벽면 전체에서 울린다.
이에 비해 기둥식(라멘)구조는 슬라브에 기둥과 보(기둥 사이의 수평 구조재)가 더해진 것으로, 주로 건물 주차장이나 상업용 빌딩에 사용된다. 층간소음이 적지만 시공비가 비싸고 공사기간이 길어 공동주택의 2%에 불과하다. 초고층빌딩이나 주상복합에 이용되는 무량판 구조는 슬라브가 두껍게 들어가 공사비가 비싸지만 역시 층간소음이 적다.
2000년에 입주한 경기도 김포시의 한 아파트에서 지난 5일 환경부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직원들이 층간소음을 측정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
광운대 건설법무대학원의 양기영 교수는 “층간소음은 삶의 질이라는 기본권의 측면에서 봐야지 분양가 같은 것은 그 다음의 문제”라면서 “건설사들이 외국에서는 높은 기준에 맞춰 고급기술을 적용하면서 국내에서는 빨리 지으려고 하고 기술도 넣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벽식구조에서 바닥(슬라브) 두께를 늘리는 게 차선책이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건설사인 H사의 한 관계자는 “공사비가 올라가기 때문에 국토부 지침 등이 강화되지 않는 한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올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의 태도는 미지근하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향후 층간소음 규정을 강화할지에 대해 “5월부터 바닥 두께와 바닥 충격음을 동시에 만족하도록 바꿨는데, 뭘 더 강화하느냐”고 반문했다. 이미 도입된 기준조차 지켜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한국소음진동기술사회의 박영환 층간소음위원장은 “기준이 있어도 설계할 때만 반영할 뿐 준공 시 측정도 안 하고 나중에 그만큼 성능이 안 나와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면서 “적어도 기준을 만족하느냐는 검증하고 기준에 맞지 않을 때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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